국내 교육의 현실은 고전적 교육철학의 지향점과 거의 같다. 예체능 과목은 학습의 중요도에 밀려서 영어, 국어, 수학과 같은 과목과는 다르게 재미는 있지만 대단하지 않은 과목으로 치부된다. 교실의 공간에서 교사는 가운데 높은 교단에 위치하고 하단에는 학생이 자리를 잡는다. 이는 높고 낮은 주체의 배치를 나타내며 관계와 대상에 관한 분명한 의의를 지닌다. 교사는 가르치며 학생은 가르침을 받고, 교사는 질문하며 학생은 대답하는 등의 이분법적인 관계를 정립하며 교사에게 지배적 권위를 가지도록 한다. 학생 사이의 의견교환이나 상호작용은 학습의 방해가 될 뿐이다. 이러한 교실에서 예술은 가장자리에만 머무르거나 상황에 맞춘 학생과의 만남을 찾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존 듀이는 교실의 전통주의적 예술 교육을 경직성과 획일성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일률적으로 자기 삶에 맞추지 못한 순종적인 특징 없는 균일한 인간이 배양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순종적인 획일적 학습자를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면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비추고 있지 않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사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통 교육의 이해
인간의 능력과 바탕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따라 교육의 방법과 목표는 변동한다. 듀이는 내적인 부분부터의 개발에 중점을 두는 전통적 교육과 바깥으로부터의 형성에 기반을 둔 진보주의교육의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교육의 기초가 나타난다고 했다. 내부로부터의 개발이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을 뜻하면 반면 외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교육은 문화유산과 여러 세대를 걸쳐 이어지는 진리와 지식을 정통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교사로부터 교과를 학습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교육은 외부로부터 생성된다는 전통적 교육에 의하면 이는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하였다. 인간 본성으로 상상, 감정, 이성, 기억, 지각 등의 능력이나 기능을 가지게 되는데 평생 판이한 방식과 방향을 가지며 발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능을 사회 속에서 제대로 하려면 이러한 재능을 적재적소에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다. 생애의 초반에는 이성적 능력이 완전하지 못하므로 암기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교육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지라도 자신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배우도록 교육은 강제성을 지녀야 한다. 각종 체벌 같은 항목을 가지는 규제와 규칙은 교육에 있어서 배움의 과정을 증진하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상이나 체벌 등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고무시키는 일은 정당성을 가지며 교사와 학교는 이를 위해 최적의 환경을 구현해야 한다. 이는 교재와 교사에 몰입할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와 가르치며 질문하는 영향력을 가진 교사의 위력을 보장하는 교실 구성이 필요하다. 규칙과 규제를 통한 학습자 간 소통을 금하는 정숙한 분위기에서 능률적인 반복적 훈련이 가능할 수 있다.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두 가지 틀
가장 명백한 궤적을 남긴 것은 20세기 교육사상 중에 진보주의 교육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에서 탈피해 아이들의 인권과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의 교육 자유화 운동인 것이다.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기본은 낭만적 자연주의에 근거한 아동 중심 교육의 이념적 역사와 프래그머티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J. 루소, F. W. A. 프뢰벨, J. H. 페스탈로치, E. 케이의 아동 중심적 교육과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이란 두 가지의 이념적 다리 위에 존재한다.
진보주의 교육사상에서의 아동 중심 교육의 사상적 역사
기존의 교육이 아동의 흥미와 필요에 관계하지 않고 교육자 중심이었던 점을 꼬집으며 아동 중심 교육이 나타났다. 아동 중심 교육사상은 독일의 개혁 교육 운동, 20세기 초 미국에서 등장한 진보주의교육과 프랑스의 신교육을 아우르는 진보적 교육 전반의 학문적 뿌리이자 사상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자연주의를 주창한 루소를 거처 프뢰벨과 페스탈로치로 이어져 발전하였다.
루소는 낭만적 자연주의자로서 자발적이고 아동의 성선설적 관점을 강조하는 아동 중심적 교육을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에밀'에서 이러한 주장이 잘 나타났는데 감정과 이성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하였다. 성선설을 제시하여 기독교 원죄 사상의 철학을 반대하였으며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아동기가 성인을 축소한 시기가 아니고 성인의 준비 단계도 아님을 주창하였다. 자체가 의미를 지니는 시기이며 단계에 따른 구별을 하여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위스의 교육자인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이념을 현실의 교육에서 실천했다. 교육의 도덕적 기능을 인지적 기능만큼이나 중시해야 한다고 하며 루소의 구체적 실현 방법의 부재를 상상력과 아동의 참여를 강조하여 진보주의적 관점으로 채워나갔다.
페스탈로치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던 프뢰벨은 초등교육사상을 유아교육에 도입하며 아동기의 놀이에 집중했다. 이 기간의 놀이는 인간의 순수한 정신적 활동이며 통합적으로 보면 삶의 기준이 되는 형태라 여겼다. 공놀이나 무용 같은 운동적 놀이와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 놀이로 놀이를 구분하며 작업 놀이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진보주의 교육사상에서의 프래그머티즘과 듀이
프래그머티즘은 실용주의를 의미하며 실제적인 관점에 무게를 둔 경향이다. 듀이는 실용주의 철학자에 속하며 퍼스의 관점을 발전시켜 사상을 완성했다. 관념은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못한 형이상학적 쟁점을 비난했다. 제임스의 논점을 구체화하여 지식과 진리는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타파하려는 방법이라고 여기며 도구주의적 관점을 발전시켰다.
20세기 초 실용주의는 미국의 대표적 사상이 되었으며 듀이의 이념은 이를 널리 알리고 확립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실험학교를 세워 미국 진보주의교육의 출발점을 만들고 4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세계적 강연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여 진보적 이념을 실용적 관점으로 구체화하고 발달시켰다. 경험을 쉼 없이 재편성하여 실천함에 중심을 둔 교육관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