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학에서의 진보주의교육
협의의 진보주의 교육은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어진 운동을 말하여 광의의 교육은 고전적인 교사와 학습 내용 중심의 교육관에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주의 교육학자들은 기존 교육에 반하며 아동의 자발적 흥미를 핵심적 기제로 바라보았는데 이탈리아의 활동주의, 독일의 개혁교육학, 영미의 진보주의, 프랑스의 신교육을 포함하는 철학에서 나타났다. 진보적 관점의 교육과 전통적 교육은 대립하며 사람과 교육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듀이는 지식과 기술을 학습하는 데에 있어 지성, 감성, 의지를 균형 있게 가진 인간 양성, 개혁, 현실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아동 자기 경험을 근본으로 삼는 교육과정이 필수적인데 몸과 마음의 전인적 교과과정으로 온전한 인간의 양성을 목표로 사회생활 적응에 쓸모 있는 교육으로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 이상의 구현을 위해 진보주의 교육자들은 자발적 탐구 학습과 실험적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동의 사물을 궁구하고 발굴하는 흥미와 제작하고 결성하는 흥미, 예술적 표출의 흥미를 담을 수 있는 교육 방식을 고심했다. 1918년에 설립된 진보주의교육협회의 7개 강령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전체 학습 활동의 계기는 아동의 흥미를 전제로 한다.
교사의 권위에 근거하지 않고 사회적 필요에 따라 아동이 꾸밈없는 자유를 부여받아야 한다.
교사는 외적 권위를 가진 감독자가 아닌 사랑과 지지를 주는 안내자여야 한다.
아동의 지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과의 평가와 더불어 아동의 사회적, 지적, 도덕적, 신체적 발달을 담는 전인적 아동의 평가가 있어야만 한다.
가정과 학교는 긴밀하게 협조하며 아동 생활에서 필요한 요구를 충분하게 하여야 한다.
교육의 우선 목표는 아동의 건강 촉진에 있어야 하며 전인적 발달에 영향을 주는 조건에 유념하며 환경, 학교 시설, 안전 조건은 밝고 안전해야 한다.
실험적 연구에 따른 실험학교인 진보적 학교는 새로운 교육 개혁운동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1957년에 일어난 소련의 앞선 인공위성 발사의 성공에 다수의 미국인이 충격을 받았고, 실패의 근거를 특별히 과학기술 분야 교육의 낙오로 꼽았다. 진보주의 교육이 기본적 지식의 구조적 습득을 간과하여 학력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도 저하하며 교사의 지도력 부재를 불러일으켰다며 본질주의자는 진보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와 같은 논박 속에서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중심적 위치가 무너지게 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진보적 교육사상은 예술교육에 있어서 철학적 토의와 실현 과정에서 핵심적 의미와 무게를 주었으며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교육에 미친 진보주의 교육의 영향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교육의 사고 전환과 교육을 대하는 다른 접근을 외치며 아동의 자기표현을 부각하고 교과가 아닌 스스로 고유의 경험과 관련하여 배운다고 주장했다. 예술교육론은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바탕 위에서 다양한 사고를 펼쳐나갔다. 이론과 실행을 통해 예술교육의 방식과 내용, 효과와 의미에 대한 다채로운 연구를 이뤄나가게 하는 교육학자들을 통해 예술교육의 실용적 개선이 이뤄졌다. 프뢰벨, 페스탈로치, W. 딜타이 등의 학자들은 학습자의 흥미와 성격에 맞는 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듀이는 경험의 재편성으로서의 예술 활동을 강조했다. 이에 이어 듀이는 또한 진보적 학교와 교육이 가지는 병폐적 오류에도 강하게 반발하며 이론과 행위의 비판적 검토를 강조했다. 그는 교육 방식에서의 과학적 지성과 태도를 중요시했는데 반형이상학적 관점과도 일치하는데 이는 미국과 독일의 진보주의교육학과 깊은 차이점이었다.
몬테소리의 교육에서는 가톨릭적인 기독교적 특징을 관찰할 수 있으며 발도르프 교육학을 끌어나간 슈타이너가 신지학에 근본을 둔 인지학을 제창한 특징들을 보면 20세기 독일의 개혁 교육의 많은 부분은 비합리적인 경향성과 형이상학적 관습을 따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학교에 대한 비판과 아동 위주의 교육개혁의 주장이었다. 전통적 학교의 도를 넘는 주지주의교육의 폐단을 비판하며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교육을 탈피해 감성과 욕구 등의 반합리적 입장을 강조했다.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개인의 양성을 위한 교육 개혁운동은 그림, 글짓기, 노래, 조형예술, 체육의 과목의 내용과 기술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며 학교의 정규과목으로 도입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하였다.
전문인의 양성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만끽하는 능력을 높여주는 차원의 교육이었으며 따라서 민요, 율동, 합창, 놀이 등의 익숙하고 친숙한 교육 방법이 적용되었다. F. 외테가 공동체 의식을 목표로 하는 노래 집단을 만들고 창작 집중적 음악 교육을 시도하고, 무용과 체육교육에서는 R. 보데와 E. J. 달크로즈의 율동을 대표로 하는 개인적 표현을 강조하였다. 루제르케는 아마추어 연극의 중요성을 느끼며 보급에 힘썼다.
미술과 음악 등의 교육 원리 및 교육 방법의 개선되고 일반적 교육학의 고유성과 중대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며 각국의 교육자들은 교육의 틀을 깨고 진보 교육학의 범주를 유지하며 개인의 발달에 맞춘 교육을 하기 위해 다채로운 접근을 꾀했다. 근대 교육철학의 핵심적 뿌리인 객관적 진리 모델에 의문을 가지며 독일의 개혁 교육학자들은 내인적 지식 해석과 반합리적 단계 교육의 당위성을 제기하며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근본으로 하며 예술교육은 강건한 위치를 차지해 나갔다.